고갱전, 달과 6펜스 어슬렁 문화생활


"예술은 표절 아니면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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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전이 던진 질문 '미술은 무엇인가'
고갱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화단에 깊숙이 침윤된 고갱의 영향력을 풀어내는 기획이 아쉬웠다.
[306호] 2013년 07월 19일 (금) 23:15:11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webmaster@sisain.co.kr
매년 방학 시즌이면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가 줄을 잇는다. 미술계의 연례행사인 데다 대부분 서양미술의 거장이나 명화 위주 전시다. 올해도 <디지털명화 오디세이 시크릿뮤지엄>(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알렉산더 칼더>(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이후>전(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열리고 있다. 

특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고갱전은 미국과 유럽 미술관에서 선별한 고갱의 작품 약 55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고갱 진품들을 한자리에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황색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타히티의 여인들>은 서구 전통회화와 결별하면서 그림을 자율적인 시선에서 새롭게 해석한 고갱의 매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9월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갱전을 찾은 관람객들. 
ⓒ시사IN 신선영
9월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갱전을 찾은 관람객들.
사실 인상주의 이전의 서구 회화는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한편, 그려진 그림을 실제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에 반해 고갱은 객관적인 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그 대상을 보고 정서적으로 감응하는 자신만의 느낌을 그리는 일이 그림이라고 생각한 이다. 아울러 회화는 캔버스와 물감, 붓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며 화면을 형태와 색채의 구성체계로 이해한 화가다. 따라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고유한 일이고 한 개인의 개인성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 주제와 기법은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통해 나의 시각, 세계관을 드러내는 예술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현대미술이다. 고갱은 당시 인상주의자들이 즐겨 그린 도시를 떠나 타히티로 가서 그 이국의 자연 풍경 속에서 새로운 대상, 낯선 색채, 미묘한 아름다움을 평면적인 화면과 자의적인 형태 및 색감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감각을 만들고자 했다. 이제 예술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스타일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모더니스트라고 부른다. 그와 같은,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가능하게 해준 기원에 해당하는 고갱의 중요한 작품 몇 점이 이번 전시에 포함된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우선 ‘낙원을 그린 화가’라는 전시 타이틀은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가 비록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타히티로 떠났지만 자연과 (서구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비문명화된, 야만적이고 자연적인 그들의 모습이 고갱에게는 매력적인 대상, 욕망의 소재들이었다. 그 시선은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이기도 하다. 그런 고갱의 시선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 땅에 수용되어, 한국의 자연과 가난하고 헐벗은 시골 여자 아이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보고 그리는 이인성의 그림, 시선을 낳기도 했다. 혹은 여자의 누드 자체를 탐미적으로 재현하는 ‘권옥연류’의 그림도 생산해냈다. 그러니 고갱의 영향은 이미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화단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고갱 전시와 연관한 기획 전시라면 그런 시각에서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마련된 <…고갱 그리고 그 이후>전에 출품한 다섯 작가의 작품은 그야말로 생뚱맞아서 관객들을 충분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냥 깔끔하게 고갱 작품만을 잘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미술관이 외국 작가 전시를 좋아하는 이유 


대형 기획전이 여전히 외국 작가, 그것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작가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미술관들이 경쟁적으로 외국 작가 전시를 마련하는 이유는 장사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국내 작가 전시는 이벤트성이나 대중을 동원할 매력이 없다고 본다. 이제 전시도 영화나 음반 사업처럼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정도, 그러니까 수익성이 주요 기준이 되고 척도가 된다.

특히 언론사가 주관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대부분 규모가 있는 지자체 미술관에서 여는데, 지자체의 관련 공무원이나 미술관에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대중성’과 ‘공공성’을 오로지 미술관을 찾아오는 관람객 숫자로만 확인하려 든다. 이 지점에서 양자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미술관은 전시를 제공하고 이윤을 분배하는 한편 매우 편리한 방식으로 기획을 대신한다. 언론사는 그들 매체를 통해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다. 문화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모색이 우선시된다. (이번에 고갱 전시를 주최한 곳은 한국일보사다. <한국일보>가 파행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전시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국일보사는 몇 해 전 샤갈 전시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그러한 유형의 전시를 기획해왔다.)

외국 작가들의 전시가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이유도 그러한 사업성 전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들 귀에 친숙한 작가여야 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사회적 이슈나 정치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다소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은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이 지닌 맥락과 서구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평에서 특정 작가를 조망하고 이해하는 눈들이 부재할 때 전시는 특정 작가의 이름값에 마냥 휘둘릴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언론 플레이와 순수 미술의 신화와 ‘대중의 눈높이에 맞췄다’고 하는 달콤한 수사에 의해 포장된다.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외국 작가들로 이루어진 블록버스터 전시가 좀 더 다양한 차원에서 의미 있는 전시들로 수놓아졌으면 한다.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가들이나 언론사들의 장삿속, 대중적인 작가들의 지명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전시로 국한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아쉬움은 대부분의 전시가 외화내빈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사정도 있겠지만 과도한 선전에 비해 속 빈 강정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지자체 미술관들이 대중성에만 비중을 두면서 전시되는 작품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할 경우 그저 대관 화랑이나 임대업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미술관이란 궁극적으로 미술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새로운 미술과 대면하게 하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의 삶과 문화에서 미술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하는 곳이다. 그로 인해 사물과 세계를 보는 눈을 확장시키고 감각을 높이는 곳이다. 전시는 궁극적으로 대중에게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감각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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