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캔두댓, 그리고 협동조합 운동은 시나브로

거의 10년전 쯤 대학에서 협동조합 얘길 들을 땐, 와닿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게 어딨냐며, 엄청 힘주어 말하던 그 교수님의 얼굴이 떠오름. 

현재의 나는 한살림과 살림의료생협 조합원이지만 그 가치만 알고만 있을 뿐, 더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음. 

오늘 <위캔두댓>을 보면서 느낀 것. 민주주의는 어렵다는 것. 공동체는 매력과 두려움이 존재하듯이. 
그리고 이야기손님으로 오신 희망제작소의 조우석 연구원의 글을 스크랩해왔다.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덜 알고 있는 부분도 알게 됨. 

일단 협동조합기본법이 그렇게 쉽게 통과되고,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던 부분은 의원들이 이 내용을 잘 알지 못한 덕분이라는 것. (여기서 정말 빵터짐. 옆에서 어떤 한 분이 의원들은 모르는게 약이네...ㅎㅎ라고 말씀하심)
이 법을 좀 면밀히 보고 싶어졌다. 특히 금융업과 보험업을 하지 못하게 한 건 아쉽. 

그리고 안산의 행복한카페와 수원의 우리동네는 꼭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 

어제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나왔던 대사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의자를 뺏기는 일보다 동료를 잃는 일" 
이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다가도 오늘 또 나는 동료가 미워지는 마음,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리더의 중요성도 강조되었는데, 위캔두댓의 그런 리더가 존재하느냐, 혹은 조합원 스스로 그런 리더가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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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협동, 그리고 사람을 향한 영화, "협동조합 180에 담긴 위캔두댓 (we can do that!)"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 이타적인 동물인가. 이전투구의 다윈적 세계에서 어떻게 협력이 번창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노력이 다방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윌리엄 해밀턴의 설명이 독보적이다. 해밀턴 법칙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이타적인 행동도 결국은 보존과 확산을 목적으로 한 유전자의 이기적 행동의 결과이다. 해밀턴은 rB와 C의 관계(r: 유전적 근친도, B: 수혜자가 받는 이득, C: 행위자가 치르는 비용)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연히 이타적 행동이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유전적으로 가까울수록 이타적 행동이 높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옆집 아저씨보다 자신의 아버지의 건강이 더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테니 말이다. 

사회학적 측면에서는 마틴 노왁이 <초협력자>에서 밝힌 상호성과 보상 이론이 꽤나 매력적이다. 노왁 역시 ‘이타적인’ 행동은 ‘이기적’ 동기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하는 면에서 해밀턴의 이론과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인간의 행동 전략, 보다 구체적으로 협동과 배신이 결정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노왁은 해밀턴의 생물학적 근친성 이론을 사회적 관계의 범주로 확장시켰다. 노왁에 따르면 사람은 상대편의 전략의 빈도와 내가 보유한 정보의 수준, 배신했을 때의 보복의 강도, 내가 얻는 이익의 정도, 평판 등에 따라서 각자의 전략을 택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협력의 시대와 배신의 시대가 순환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까.
 

노왁의 기준에 따르면 배신의 시대에서 협력의 시대, 보다 정확하게는 협력이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인 것 같다. 개인의 이익만 좇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나 개인적 차원에서나 우월전략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나친 경쟁과 금전주의는 사회 곳곳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배신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협력의 필요성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실제로 협력이 실행되고 있다.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그것이다. 설립 기업 개수 기준의 성장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현재 협동조합은 2000년 벤처기업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때마침 협동조합에 대한 영화가 한편 있다고 해서 관람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제목은 Si puo fare(we can do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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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puo fare(we can do that)

영화의 주인공 넬로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너무 좌파적이라고 비난을 받지만, 반대로 주인공이 속한 노조에서는 너무 시장주의적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조합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넬로가 발령받은 곳은 한 때 정신병동에 갇혀 있거나 그곳에서 일하던 이들이 만든 안티카 협동조합 180이다. 이곳에서 넬로의 일은 신규업무개발과 업무관리이다. 넬로는 조합원이자 환자인 파비오, 루이자, 고프레도, 오씨, 지죠, 루카, 밀리암 등과 사업을 벌여가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이자 원장인 벨키오와 마찰을 일으킨다. 넬로는 일은 편하지만 재미도 보람도 없는 우표 붙이는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일은 힘들지만 유익하며 돈도 꽤 벌 수 있는 시장참여 사업을 할 것인지를 두고 환자들에게 투표를 제안한다. 조합원들은 시장참여를 결정하고 곧이어 마룻바닥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한다. 

벨키오는 넬로가 조합원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평범한 일이 주는 긴장감이나 책임감을 감당하기 힘든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환자이며 넬로는 저들에게 무책임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하면서 넬로의 사업을 반대한다.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영화는 110분을 훌쩍 넘겨 진행된다.

사실 영화는 연매출 100억 리라 규모의 이탈리아 최대 사회적협동조합인, 1981년에 설립된 논첼로(noncello)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모티브로 삼아서 제작되었다. 1978년 이탈리아는 바자리아라는 이름의 정신과 의사의 이름을 딴 바자리아법 180호에 의해서 세계 최초로 정신병원 폐기법을 통과시켰다. 바자리아법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격리수용을 금지하고 이들에게 일자리와 머물 곳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에게 인권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의 제정으로 문을 닫게 된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 3명과 수용되어서 치료를 받던 환자 6명이 만든 회사가 바로 논첼로 협동조합이다. 

영화 곳곳에서 우리의 편견은 여러번 도전을 받는다. 첫째, 영화는 무엇보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편견임을 보여준다. 둘째 환자인 조합원은 투표를 통해서 벨키오를 이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이사장 역시 어찌되었거나 조합원 투표의 결과임을 받아들이고 순순히 이사장 자리를 내어 놓는다. 의사인 이사장을 환자인 조합원이 투표를 통해서 해고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영화는 협동조합이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은 필요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들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이자 돈을 쓸 곳이 무지하게 많은 똑같은 생활인이다. 조합원들은 사업 확대를 위해서 정신없이 달려가는 넬로에게 오히려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인권에 대한 영화이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도전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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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제에 비해서 불편하거나 무겁지 않다.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영화는 문제를 부각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라는 결사체이자 사업체를 통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현재 크렘린 궁전 도로공사까지 했다는 논첼로 협동조합의 이야기를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은 단 한곳도 없다. 해서 영화를 관람하고 싶은 분은 영화수입사인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를 통해서 단체관람 신청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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