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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도 그 날의 사고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삼풍백화점. 누군가에게는 ‘꿈의 매장’이었고, 당시 서울 시내 백화점 중 가장 최신의 시설을 갖춘 호화 백화점으로 이름나 있었다.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망연자실했고, 한편으로는 어렵게 구조되는 ‘생존자’들을 보며 응원하기도 했다.
2017년 말 방영된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삼풍백화점 사고를 모티브로 만든 드라마였다. 이제 나올 드라마가 나와주었다는 생각에 고마웠지만 2회까지 보고 잠시 멈춰야 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었고, 끝나고 나서도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률은 낮았지만, 종영 이후 사람들에게 참 위로가 된 ‘웰 메이드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마지막 회까지 드라마를 보면서 옆에는 항상 노트와 펜을 두었다. 기억하고 싶은 대사가 참 많았다. 그리고 곱씹어본다.
“강두야, 내서방 죽은지 40년이 넘었다. 언젠가는 다 잊고 괜찮아지갔지. 기다리고 살다가 깨달은거이 뭔 줄 아네? 그런 날은 안 온다. 억지로 안되는거는 그냥 두라, 애쓰지 말라. 슬프로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는거야. 받아들여야지, 어카네?” (할멈 역 나문희 대사 중)
“할멈이 말했다.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고. 나는 빈정거렸다. 그럴 거 살아 뭐하냐고. 할멈은 다시 말했다. 더 멋지게, 후회하고 실패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쫄지 말라고” (이강두 역 이준호 독백 중)
S몰의 ‘생존자’인 강두와 문수. 극 중 강두는 “살아서 불행했던 사람들 인생은 어떻게 보상할껀데?”라고 따져 묻는다. 사고 이후 가난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당시의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무덤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척하는 문수는 “자기만의 감옥. 아무도 가둔 적이 없는데 왜 우린 못나오는걸까”라는 독백처럼 가슴 깊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만약if’이 있었을까?
삼풍백화점 사건을 더 자세히 마주하기 위해 메모리서울프로젝트에서 채록한 구술기록집 ‘1995년 서울, 삼풍’을 함께 읽었다. 유가족, 생존자, 봉사자, 구조대 등 여러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 만약 부실공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때 사람들을 대피시켰더라면.... 만약 그 곳에서 약속을 잡지 않았더라면.... 그 다양한 사연 속에서 ‘만약....”을 대입해보지만 ‘만약’은 없었다. 대신 유가족 손상철 씨의 말에서 ‘만약’이 아닌 ‘그러나’라는 접속사의 힘을 믿게 한다. “ ‘그러나’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요. ‘그러나’ 다음에 올 단어는 10년 후 제가 만들어가야겠죠. ‘그러나 어떻게 됐더라’하고. ‘그러나’라는 단어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502명이 사망하고 (6명 실종) 937명이 부상당한 그 날의 비극. 당시는 인터넷 정보망, 의료시스템, 컨트롤타워 등까지 부재했기에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그러나 사람들 간의 연대의 힘은 그 곳에서도 피어났다.
“현장 책임자가 있어도 어떤 명령을 해주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거기 들어가라고 명령했다가 2차 붕괴로 누군가 죽으면 명령한 사람이 책임을 저야 하거든요. 그런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스스로 ‘우리 들어가겠다’ 통보했죠. 책임자가 “저 안은 위험합니다” 했지만 저희는 “압니다. 추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우리의 결정으로 들어간다고 통보는 했지만 찜찜한 마음에 각자 이름을 적었어요. “혹시 우리가 구조 활동 중에 죽으면, 여기서 쇼핑하다 죽은 사람인지 봉사하다 죽은 사람인지는 구분해야 하니, 각자 이름을 적고 들어갑시다” 한 거죠. 라면박스 하나를 찢어놓고 각자 이름을 썼어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조현삼씨)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사람들 간의 상처를 마주하고, 서로 보듬어가는 그 과정이 좋았다. 특히 문수와 강두가 S몰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만들기 위해 그 가족들을 일일이 만나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드라마를 빌려 좋은 제안을 해주고 있다.
현재 삼풍백화점참사위령탑은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다. (유격백마부대 충혼탑과 대한항공 858기 희생자 위령탑도 이 곳에 있다) 정윤수 교수는 “양재동 시민의 숲에 조성된 세 가지 비극, 세 가지 조형물은 단순히 외형상 국가주의 양상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각각의 참사 성격 및 그 추모의 마음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장소를 떠난 기억이 전형적인 국가주의적 양식 아래 배치되고 구성되면서 각각의 역사적 사실과 진실, 그 의미와 책임보다는 ‘추모’ 그 자체의 고정된 형식으로 압축되어버렸다”며 장소와 기억에 대한 과제를 던져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려는 태도가 달라져야 하며 그에 따라 기억의 형식도 달라져야 한다...(중략) 삼풍백화점 참사로 숨져간 이들은 단지 ‘희생자’라고만 불려서는 안 되며 고인들 저마다의 삶의 기억들이 개별적인 존재로서 다시 기억되어야 한다. 그 장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러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상흔을 안고 사는 사람들 역시 단지 ‘생존자’로 불리거나 심지어 ‘의지의 영웅’처럼 국가주의적으로 호명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을 어루만져야 한다. 모두는 각각 소중하고도 고유한 개별의 존재들이다. 그 상처의 무늬도 다르고 이른바 트라우마의 그늘도 다르며 그것을 잊거나 혹은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다르다. 비록 고통스러운 일이겠으나, 그 각각의 기억들을 회복하고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마음속 말들을 기록해야 한다. 그 상흔들을 기억해야 한다”
극 중 문수가 말했듯이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참사가 일어났지만,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되었노라고 변화되기 위해서. 그래야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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